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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조사

화성 매곡리 토기요지 발굴조사 華城梅谷里土器窯址發掘調査

  • 번호9773
  • 조회232
  • 등록일2022.02.16
  • 기간 : 1994.08.01 ~ 1994.09.01
  • 조사부서 : 학예실

조사명
안산-안중간 서해안고속도로건설공사구간내 화성매곡리 토기요지 발굴조사
安山-安中間西海岸高速道路建設工事區間內 華城梅谷里土器窯址發掘調査


위치: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매곡리 산 1-1 / 시대: 고려시대 말 ~조선시대 초
매곡리 토기요지는 발안천發安川 유역의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야산구릉사면에 점력이 강한 점토층에 구축되어 토기를 대량생산하던 곳으로 발안천을 이용하여 해로海路와도 연결되어 운송과 공급이 용이하고 땔나무가 풍부하며 서고동저西高東底의 지형으로 요내의 열을 보존시키는데 적합한 장소에 요장이 설치되었다. 

이 유구에서 토기요가 3개 발견되었는데 가마는 돌처럼 단단한 점토층 사면을 파고 들어가 만든 지하식단실요地下式單室窯로 돌을 사용하지 않았다. 소성실과 연소실까지 3~4m 길이의 소규모로 평면은 타원형이나 땅콩형으로 소성실과 연소실 사이에 격벽이나, 불창시설도 없었으며 수평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평요平窯인 점이 특징이다. 이는 부여정암리扶餘亭岩里 고려시대 토기요와 유사하며 서해안 일대의 지역적 특성과 백제문화권내의 토기요 기본구조와 같다. 연소실과 소성실이 격벽없이 급격히 좁아들은 것은 요내를 완전히 밀폐하여 토기를 환원소성으로 번조하기 위함으로 검게 환원된 요바닥, 요벽, 천정 잔편과 연煙을 먹은 토기편으로 증명된다.
출토유물은 일상용기로 연질과 경질로 대별된다. 기형은 대부분 호, 자배기, 병, 장 군, 시루, 뚜껑, 주구注口, 방추차 등이며 40~50cm의 중간크기의 항아리와 자배기 편이 많아 소형보다는 일상생활의 저장용, 운반용기가 많고 편호 또는 편병도 보인 다. 토기 태토의 입자는 고우며 그룻의 바닥에는 벼이삭 자국이 남아 있어 토기의
재임과 요내 연 생성 분위기 조성용으로 벼이삭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1. 梨花女子大學校博物館, 「華城 梅谷里 土器窯址 發掘調査 報告」,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구간(안산-안중간)유적발굴조서 보고서(3)』,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 1995. 12. 30


보고서: 비매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