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전체를 화폭 삼아 넓은 이파리들과 그 사이로 뻗어 내린 포도넝쿨이 그려진 대형의 항아리이다. 포도넝쿨을 자유자재한 붓놀림으로 철사(鐵砂) 안료로 농담을 주어 그려 마치 한 폭의 묵포도도(墨葡萄圖)를 연상케 한다. 포도그림의 구도와 세부표현 등에서 심정주(沈廷胄, 1678~1750)나 권경(權儆, 생몰미상), 이인문(李寅文, 1745~1821) 같은 18세기의 화가들의 포도화풍이 느껴지기도 한다.
『승정원일기』 현종 14년(1673)의 기록을 보면, 산화철은 본래 붉은 색이고 구워지면 색이 검게 되는데 간혹 누렇게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철화백자의 색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항아리의 포도문은 그러한 발색의 어려움을 농담의 표현으로 활용하여 뛰어난 제작 솜씨를 보이고 있다. 이와 유사한 크기와 형태의 항아리에 운룡문이 그려진 용준(龍樽)은 왕실 의례용으로 사용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