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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명품직관 名品直觀
[특별전] 명품직관 名品直觀
전시장소기획전시실
전시기간2022. 05. 31 - 2022. 12. 30

90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은 오랫동안 역사적 가치가 높고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들을 수집, 전시해왔다. 이 전시는 소장품들 가운데 국보 제107호 〈백자철화 포도문 항아리〉를 비롯한 17점의 국보·보물 등 국가문화 유산과 이화가 아끼고 사랑해 온 명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느리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이다. 작품을 직관하면서 아름다움과 그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소중한 기회를 드리고자 한다.

명품을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적·미술사적 이야기들을 활용한 디지털 영상이 함께 제공되며, 또 전통미술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현대미술 작가들의 증강현실(AR), 조각, 공예, 사진 작품 등도 함께 전시하여 우리의 전통문화가 가장 세계적이고 독창적으로 구현될 수 있음을 알리고자 했다. 이 전시를 통해 선입견 없이 우리 미술이 전하는 이야기 속에서 잠시 쉬어가며 창의력도 고취시키는 경험을 얻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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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자철화 운룡문 호

    백자철화 운룡문 호

  • 백자철화 포도문 호

    백자철화 포도문 호

  • 기사계첩

    기사계첩

  • 고구려 평양성 축성 기록 글자

    고구려 평양성 축성 기록 글자

  •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7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7

  • 조복

    조복

  • 녹원삼

    녹원삼

  • 매해파행도

    매해파행도

  • 조문명 초상

    조문명 초상

백자철화 운룡문 호
  • 본래 청화백자로 제작되어 궁중 연향에 사용되었던 용준龍樽이 철화백자로 제작된 예이다. 철화백자 용준은 기록과 유적 조사를 통해 17세기 전반경 본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당시 조선에 거듭된 전란戰亂으로 물력과 청화 안료가 부족하여 청화백자 용준의 제작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부득이하게 여타의 방책들이 모색 되면서 ‘석간주’로 무늬를 그린 철화백자 용준이 제작되고 사용되기에 이른다. 간지干支 명문과 출토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17세기 전중반 운영 시기가 추정되는 관요지에서 확인된 철화백자 용문양의 항아리 편들이 이를 입증한다

  • This is an example of yongjun—a king’s jar with dragon design—adorned in underglaze iron. A yongjun’s designs were typically drawn in underglaze blue. The early 17th century, when white porcelain yongjun in underglaze iron were produced, took place in the aftermath of war, and those yongjun in underglaze iron were produced to solve the shortage of white porcelain yongjun in underglaze blue. Relevant evidence was identified at the royal kilns, whose operational period is presumed to have been the early and mid-17th century, where jar shards with a dragon design in underglaze iron wer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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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철화 포도문 호
  • 포도 넝쿨이 탐스럽게 그려져 있는 이 도자기는 조선시대 18세기에 만들어진 대형 항아리이다. 마치 먹으로 그린 듯한 포도 넝쿨은 철화 안료로 그려졌다. 철화 안료는 굽는 과정에서 가마 속 상황에 따라 검거나 누렇게 변하여 색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항아리에 포도 넝쿨을 그린 사람은 이 안료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도공 또는 화원이었을 그는 철화 안료와 불이 만나 변화될 색을 예견하고 이를 그림의 농담 표현에 잘 활용하여 도자기 위에 한 폭의 멋스러운 묵포도 그림을 그려냈다. 이 도자기와 같이 대형의 항아리에 철화로 포도문이 그려진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주로 운룡문이 그려져 왕실 의례용으로 사용되었다. 항아리 전체를 화선지로 삼아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듯 능숙하게 그려낸 이 포도문 항아리는 뛰어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 This is a large jar with a grapevine spreading out its broad leaves drawn on the entire body without additional decorations as if its whole surface were a white canvas. The varying light and shade of the grapevine are expressed in iron paint with free and bold brushstrokes, a reminder of a black and white painting of grapevines. The large size porcelain completed by joining the upper and lower parts of the jar, produced separately, is not easy to produce due to the difficulty in figuration. In addition, the characteristic of iron paint, a color that is difficult to develop stably, was used to express the light and shade. This white porcelain jar boasts a high level of ceramic technique and pictorial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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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계첩
  • 이 그림의 제목인 ‘기사耆社’는 조선시대 정 2품 이상의 문신들 가운데 70세 이상의 중신重臣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모임의 이름이다. 조선 왕실은 이 모임의 노신老臣들을 우대하고 왕과의 친목을 돋우기 위해 ‘기로소耆老所’라는 관청을 만들었다.
  • 이 행사의 주인공인 숙종은 태조 이성계가 60세에 이 모임에 들어갔다는 고사에 근거하여 환갑을 한 해 앞둔 1719년에 미리 기로소에 들어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왕실은 4월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경희궁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었고, 그 행사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 이 화첩畫帖이다. 이 화첩은 숙종이 내린 글, 서문과 발문, 경현당 석연도景賢堂錫宴圖와 기사 사연도耆社賜宴圖 같은 행사 그림들, 참석 중신들의 초상과 직접 쓴 축시祝詩 등 총 50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은 궁중 화원이었던 김진여金振汝, 장태흥張泰興, 박동진林東晉, 장득만張得萬, 허숙許叔이 그렸지만, 초상화를 그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화첩은 숙종 46년인 1720년, 숙종 승하 이후에 완성되었다. 모두 12부를 만들어서 1부는 기로소에 보관하고 나머지 11부는 이 잔치에 참석한 중신들에게 한 부씩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 〈기사계첩〉은 당대 최고 궁중 예술가들이 최고급 재료를 써서 제작한 궁중 행사의 공식 기록 그림으로, 조선 후기 문화의 품격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보물로 지정되었다.

  • Gisa is another name for Giroso, the hall of the Elder Statesman. Giroso was first established in 1394, the third year of the reign of King Taejo (1392~1398).
  • Kings who reached 60 years of age and civil officers above the Second Court Rank who reached 70 years of age were admitted to the Hall. An Eo-cheop, the royal registration card carrying the owner's name, date of birth, and date of admittance, is submitted to and acepted by the Gisa. Gyecheop is an illustrated record that documents a particular gathering of the Gisa members. It was painted by Kim Jin-yeo, Jang Tae-heung, Park Dong-jin, Jang Deuk-man, and Heo 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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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평양성 축성 기록 글자
  • 이 유물은 고구려 평양성의 돌, 즉 성석城石의 일부로, 고구려가 589년 평양성을 쌓을 때 사용했던 자연석 위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 지금까지 글자가 새겨진 성석은 6개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그 중 두 번째로 발견된 것이다. 현재 유물은 두 번째 행에서 깨지고 균열된 부분들이 있어 안전한 보관을 위해 하얀 석고로 고정되어 있다.
  • 성석에는 평양성 공사에 관여했던 축성 책임자와 공사일자, 책임구역 등이 27개의 글자로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기유년 3월 21일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향하여 12리 구간은 ‘물구(물성) 소형’인 ‘배수 백두’가 성벽 축조를 감독하다己酉年□[三]月廿一日自此下向東十二里物苟[物省]小兄俳□[湏]百頭作節矣”라고 해석된다. 이같이 고구려의 관직명 등을 알 수 있어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강건함과 약동감이 충만한 필치는 서예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성석은 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 This stone tablet is from Pyeongyang fortress, and is inscribed with description about the building schedule of the fortress, specifying details, working hours, responsibilities, and the name of the construction supervisors and the area for which they were responsible. This piece provides crucial information about caligraphy and the titles of official positions on Goguryeo. The powerful and vibrant calligraphy is typical of Goguryeo, thus this piece is valuable in the history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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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7
  •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7〉은 검푸른색의 종이에 은가루[銀泥]를 사용하여 ‘묘법연화경’ 전체 일곱 권 가운데 마지막 7권을 쓴 경전이다. ‘묘법연화경’은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천태종의 근본 경전이다. 묘법연화경은 ‘법화경法華經’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고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다. 이 경전은 병풍처럼 옆으로 길게 펴서 볼 수 있으며, 총 길이는 10m 81㎝이다.
  • 고려시대에는 불교 수행 방법으로 불경을 베끼는 일이 유행했다. 이 사경 역시 그러한 경향 아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책 끝부분에는 이 경전을 만든 목적이 자세히 적혀있다. 고려 우왕 12년인 1386년에 죽산군부인竹山郡夫人 전씨 등이 시주하여 각보覺普의 주선으로 각연覺連이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경전에 비해 간행기록이 구체적이고 완전하게 작성된 것이 특징이며, 시주자의 가족을 위한 기원뿐만 아니라 국왕과 국가를 위한 기원도 기록되어 있어 가치가 높다.

  • The Lotus Sutra is a fundamental Buddhist text and, along with the Avatamska Sutra, had the biggest influence on the establishment of Buddhism in Korea. This particular sutra is the seventh book of the seven-book Lotus Sutra, and is brush-written in silver on dark blue paper. It has significant academic value because the publication record at the end of this sutra specifies that it was made in 1386, the 12th year of the reign of King Woo of Goryeo by Gagyeon with the donation from Lady Chun, the wife of Lord Juksan, through the arrangement of Ga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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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
  • 조복은 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입었던 예복이다. 관원들의 예복 가운데 가장 화려한 옷으로, 경축일, 설, 동지, 그리고 조칙을 반포하는 날 등 경사스러운 의식 때 입었다. 금관이라고 부르는 양관을 같이 쓰기 때문에 금관조복 이라고도 한다. 조복은 양관과 적초의, 적초상, 중단, 대대, 혁대, 폐슬, 후수, 패옥, 말, 혜, 홀로 구성되어 있다. 품계에 따라 양관 윗면에 붙은 금색 선인 양의 개수를 비롯해 허리 띠인 대와 손에 드는 홀의 재료, 허리 뒤에 다는 후수의 무늬, 조복 양옆에 늘어뜨리는 패옥의 색상 등이 달라진다.
  • 중요민속자료인 이 적초의는 조복을 입을 때 가장 겉에 입는 옷이다. 본래 얇은 견직물인 초로 만들었기 때문에 적초의라고 했으나, 후대에는 순인이나 항라로 만들었다. 깃과 도련, 소매 끝에는 검은색 선을 두르는데, 붉은색과 맞닿는 부분에 0.2㎝ 너비의 흰색 선을 끼워 넣은 정교한 솜씨가 돋보인다.
  • 또 다른 중요민속자료 청초중단은 적초의 아래 입는 옷이다. 청색 초로 만들어 청초중단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법전인『경국대전』에는 백초중단 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남아있는 조선 말기 조복은 청색으로 바뀐 청초중단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 청초중단의 중단에도 적초의처럼 소매 끝과 도련에 검은색 선이 둘려져 있다.
  • 이 적초의와 청초중단은 창덕궁에 소장되었던 복식 유물로 전해진다. 두 점 모두 제작 솜씨와 보존 상태가 우수해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 Jobok was the court attire that officials wore when offering felicitations to the king on days of celebration or while presenting a document containing their advice. As a geumgwan, which means gilt headgear, is included, jobok was also called geumgwanjobok. The attire consisted of gilt headgear, red robe, red outer skirt, inner silk coat, broad waistband, rank-specific leather belt, lap cover, rear drape, jade ornaments, silk socks, leather shoes, and hand-held tablet. Status was differentiated by the number of ridges on the headgear, the material used for the belt and hand-held tablet, the rear drape pattern, and the color of the jade orna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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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원삼
  • 원삼은 둥근 형태의 맞깃이 달린 옷으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여성 예복 중 하나이다. 크게 궁중용과 민간용으로 구분되는데, 궁중 원삼은 신분에 따라 색과 문양에 차이를 두어 왕비는 붉은색의 홍원삼, 비빈妃嬪은 자주색의 자적원삼, 공주와 옹주는 녹색의 녹원삼을 입었다. 녹원삼은 민간에서도 착용이 허락되어 활옷과 함께 혼례복으로 사용되었는데, 민간용은 궁중 원삼과 달리 소매에 붙인 색동의 폭이 넓고 그 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이 녹원삼의 겉감은 복숭아와 석류, 불수감 문양이 있는 비단으로 만들어졌고, 가슴과 등에는 금사로 수놓은 봉황 흉배가 달려 있다. 소매 끝에는 홍색과 황색 두 줄의 색동과 흰색 한삼이 달려 있고, 녹원삼 전체에 장수와 복을 의미하는 글자인 ‘수壽’자와 ‘복福’자가 금박 으로 찍혀 있다. 전체적인 형식으로 보아 이 녹원삼은 왕실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Wonsam was a ceremonial robe worn by royal and noble women. Its color and decorative patterns varied according to the wearer's status. Green wonsam was worn by princesses, court ladies, noble women, and ordinary people were allowed to wear it as wedding clothes.
  • The outer fabric of the wonsam is green silk with peach, pomegranate, and fingered citron motifs. Each end of the sleeves is decorated with two stripes, red and yellow, and an additional white fabric piece. Decorated with the gilt letters wishing for longevity and good fortune and with gold phoenix insignia badges embroidered on the front and back, this wonsam is likely to have been worn by a member of the royal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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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파행도
  • 조선 18세기에 정조의 신임을 받으며 당대 최고의 화가로 활동했던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1745~1806 이후)가 비단에 그린 그림이다.
  • 그림의 상단에 김홍도의 스승이었던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쓴 그림평이 붙여져 있는데, 이 내용을 통해 김홍도가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울 때 자주 보던 경기도 안산의 풍경을 풍속화로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의 제목인‘매해파행’은 ‘길 가는 젓갈 파는 할미’라는 의미로, 강세황의 그림평 에서 따온 것이다. 그림 속에는 바다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새벽녘, 한 무리의 여인네들이 바닷가를 지나고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된 이 여인들은 젓갈을 팔기 위해 새벽같이 집을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 중 맨 뒤편으로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인 채 아기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이 작품은 김홍도의 풍속화 중 30대의 정교한 묘사력이 잘 드러난 걸작으로그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현재 같은 병풍에서 분리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 점의 그림이 남아 있다.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답상출시도踏霜出市圖〉와 김홍도 미술관 소장의〈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이다. 이 세 그림은 화면 상단에 강세황의발문이 별도로 붙어있는 공통된 형식을 보여주며, 작품의 크기와 화풍 또한 매우 유사하다.〈매해파행도〉와 함께 소개하는〈공원춘효도〉는 조선 후기 과거 시험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시각 자료이다.

  • Going to the Seaside Market is surmised to be one of the early works of Kim Hong-do(1745~after 1806), the best royal court painter of the 18th century. Depicting women selling fish, it is believed to have captured a real-life scene in Ansan, the artist’s probable birth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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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명 초상
  • 조문명趙文命(1680~1732)은 영조 임금 초기에 계속 일어났던 역모로부터 왕권을 안정시키고 확립할 수 있도록 기여한 인물로, 탕평蕩平 정치를 실현 하고자 노력한 유력 정치가였다. 영조 4년 1728년에 이인좌, 정희량 등이 주도한 무신란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에 녹훈되었고, 영조 3년 1727년에는 그의 딸이 왕세자의 빈으로 책봉 받기도 했다. 조문명은 분무공신으로 녹훈되면서 풍릉군豐陵君에 책봉되었고 병조판서가 되었다. 이후 대제학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에까지 이르렀다.
  • 이 초상화는 분무공신에 녹훈된 조문명에게 상으로 그려준 것으로 추정된다. 오사모烏紗帽에 단령團領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속에 모아 잡은 채 교의交椅에 앉아 있는 전형적인 관복 전신 좌상官服全身坐像이다. 이 초상화와 같은 분무공신 초상화는 진재해秦再奚(1691~1769) 등의 유명 궁중 화원이 그렸는데, 박문수朴文秀(1691~1756)의 초상화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 초상화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18세기 작품으로, 2017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This is a portrait of Cho Mun-myeong(1680~1732), a deputy prime minister under King Yeongjo. Painted when Cho was the minister of defense, it depicts him in an official uniform sitting on a chair covered with tiger skin. This is how officials were typically portrayed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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