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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조사

광주 선동리 2호 도요지 발굴조사  廣州仙東里2號陶窯址發掘調査

  • 번호9767
  • 조회172
  • 등록일2022.02.16
  • 기간 : 1986.04.01 ~ 1986.05.01
  • 조사부서 : 학예실

위치: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초월읍 선동리 산 1-1 / 시대: 조선


광주번천리 5호 조선백자 가마와 같이 중부고속도로 건설예정구역에서 발굴조사된 가마터로 서울에서 서청주 방향으로 곤지암인터체인지 가기 전 중부고속도로 우측 산 경사면에 위치한다. 가마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교란된 도편퇴적더미와 지표에 흩어진 도편을 수습 조사하는 것으로 그쳤다. 이 가마터는 서울의 사옹원의 분원으로 10년간의 간지명이 있는 도편이 생산되었으며 임진왜란 직후의 가마로 조선전기와 중기의 과도기적 양상을 잘 보여준다. 


태토가 정선되지 않아 유색은 주로 회백색이며, 굽은 높은 역삼각형으로 얕고 예리한 굽, 안굽, 오목굽과 고려시대 청자의 해무리 굽처럼 넓은 굽도 몇 점 있었다. 굽에는 전시기보다는 굵은 백색 규석립硅石粒을 받쳐구워으며 포개어 구운 것은 없었다. 다른 시기의 관요계통의 도자는 대개 갑발匣鉢에 넣어 구웠으나 선동리 2호의 경우는 갑발 수가 극히 적었던 점으로 보아 거의 모든 도자기를 갑발에 넣지 않고 구은 흔적이 있어 임란 후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간지는 1640~1649의 10년분으로 ‘庚辰’(경진), ‘辛巳’(신사), ‘壬午’(임오), ‘癸未’(계미), ‘甲申’(갑신), ‘乙酉’(을유), ‘丙戌’(병신), ‘丁亥’(정해), ‘戊子’(무자), ‘己丑’(기축)이며 ‘左’(좌), ‘右’(우) 글자와 함께 쓰여 졌으며 발과 접시 잔의 일부에서만 발견된다. 출토유물로는 무문백자가 주류를 이루나 철화백자, 청화백자, 청자가 각각 소량 수습되었고 무유無釉 도편도 다량 출토되었다.